본문 바로가기
철학이야기

성리학 ‘성즉리 性卽理’와 양명학의 ‘심즉리 心卽理 ’, ‘치양지설 致良知’ 이야기

by 연구일인 2024. 4. 13.

성리학의 성즉리와 양명학의 심즉리의 차이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양명학도 성리학도 둘 다 유학이란 점에서는 같습니다. 공맹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계승한다는 점에서는 같아 중국에서는 주자학과 양명학이 함께 연구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중국의 유학의 거의 양명학이 주류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주자학 중심입니다. 

 

 

 

성리학 성즉리와 양명학의 심즉리

그럼 주자와 양명은 모두 공맹을 계승하고 있는데 왜 달라질까?

 

만약 제가 어떤 주장, 이론을 펼치면 제가 살아 있으니 물어보면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공맹이 안 계시니 여쭤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책!

하물며 지금은 책이 넘쳐나니 다독이 주류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책도 귀하니 정독! 천천히 읽고 자주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해보고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중에서 꽂히는 자리도 다릅니다. 

 

각자 자신의 해석 생각도 달라지게 됩니다. 결국 맹자의 사상중 꽂힌 자리가 다르고 거기에 자신들의 생각과 해석이 다를밖에 없었던 겁니다.

 

 

마음(心)의 본체는 성(性)이고 성은 곧 이(理)이다.

요즘은 고등학교 과정에서도 참 어려운 문제들이 많은데요. "마음의 본체는 성이고 성은 곧 이이다"는 성리학일까요 양명학일까요? 이건 성리학과 양명학의 공통점입니다.

 

그럼 두 문장으로 짜르면, 문장의 앞 부분 ‘마음의 본체가 성이다’ 이것도 공통점입니다. 문장의 뒤 부분 ‘성은 이이다’는 그럼 이것도 공통점입니다. 그럼 양명학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은? ‘마음이 이다’란 표현입니다.

 

성즉리

주자가 말한 성즉리란 어떤 의미일까요? 주자는 이기론에 따라 마음도 이와 기로 설명을 합니다. 마음은 이(理)가 모이는 장소로서의 기관이라고 보아 심은 기(氣)라고 보았고, 인간의 마음속에 부여된 하늘의 이치를 성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우주의 이치인 리를 인간이 본성으로 품고 있다는 것이 성즉리설입니다.

결국 마음은 이와 기로 돼 있는 것이죠. 그러니 마음속에 하늘이 준 이치가 본성이라는 건데요. 그래서 이다!

 

심즉리

그러나 양명은 하늘이 부여한 이치가 있어! 그게 성이야!라고 인정합니다. 성즉리가 맞는데요. 그런데 성을 곧 심이라고 봅니다.

태어날 때 갖는 마음(성)이 곧 리라는 것이죠. 그러니 심 = 성 = 리라는 도식화가 가능한 거죠. 따라서 ‘심즉리’는 양명학밖에 못 쓰는 표현인것이죠. (심 = (성) = 리)

( 성리학 : 심(心) 中 성(性) = 이(理) 양명학 : 심(心 전체) = 성(性) = 리(理) )

 

성리학은 마음도 하나의 신체기관과 같아서 마음은 이가 모이는 장소로서의 기관이라고 보아 마음은 기란 그릇이 있고 그 속에 하늘이 이치가 들어와 본성을 이룬다고 했으니 마음은 '이'와 '기'의 결합이라고 보았지만 양명은 마음이 곧 '이'라고 보니. 마음에 물질적인 기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천리(天理) = 4덕 vs 양지

주자나 양명은 두 분 다 맹자를 계승하였으니 성선을 입장을 취하는 분들입니다. 맹자의 성선의 근거가? 4단∙4 덕설, 양지∙양능설을 들어 성선을 주장하였는데요, 그에 대한 업그레이된 이론을 주장하는 분들입니다. 신유학인 성리학과 양명학은 천리를 부여받아 그것의 본성 = 이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리학은 ‘천리 = 마음 中 본성(性) = 4 덕’이라고 주장하고, 양명은 ‘천리 = 마음 = 본성(性) = 양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성리학은 4단 4덕을 강조하여 사상을 전개하고 양명학은 양지 양능을 강조하여 사상을 전개하게 됩니다.

 

치양지(致良知)의 의미

결국 양명 철학의 핵심을 꼽으라면 치양지설입니다. 치(致) ‘이르다’(도달하다, 성취하다)는 의미인데요, 그럼 치양지란? 양지에 이르다, 도달하다. 성취하다란 뜻입니다. 결국 양지를 드러내는 것,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적 본성인 양지를 완성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이젠 양지의 의미만 알면 되는 거죠.

 

양지(良知)

양지는 맹자가 성선의 근거로 이미 제시했던 것입니다. 맹자의 양지 양능설에서의 그 양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뭐가 착한지 뭐가 악한지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알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우리식으론 양심 정도 될 거고. 양명은 이걸 양지라고 합니다. 단어를 풀면, 양은 선량한 양 지는 지식 즉, 앎이니까 선량한 마음이 주는 지식. 양심에 의한 지식 정도 무엇이 선인지를 아는 마음 그러니 선천적 앎이죠.

그럼 양명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기 마음에 비추어(양지 ≓ 양심) 떳떳하지 않은 행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양심에에 비추어 봤을 때 쪽팔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생활 속에 잘 쓰는 말이기도 하죠.

"니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수양

그럼 선천적인 앎이 있는데 왜 악행이 있죠? 그건, 사욕이 양지를 가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악행은 양지로 인해서는 아니죠. 그러니 사욕으로 인해서입니다. 그러면 사욕을 걷어내면 양지가 구현되겠네요? 그러나 양지는 사욕으로 인해 어두워지거나, 더럽혀지지는 않는 마음입니다. 다만, 사욕에 의해 가리어질 수 있는 마음이죠. 해가 구름에 가릴 수 있듯이요. 그러니 사욕을 제거하기 위한 수양이 필요한 것이죠.

 

후천적 학습 X

양명은 이미 마음속에 선천적인 완전한 앎이 있다는 거죠. 그게 양지입니다. 이론적 학습, 후천적 학습을 하지 않아도 올바른 행위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럼 성리학에서 말하던 외적 수양의 방법, 사물의 이치 탐구 ‘궁리(격물치지)가 필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양명은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 보면 효도하고, 노인 보면 공경할 줄 안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사욕으로 인해, 양지를 가려 악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양명은 선한 마음인 양지에 낀 얼룩, 먼지 닦으면 된다고 합니다. 해가 구름으로 가려도 해가 사라지지 않도록 닦으면 됩니다. 구름이 사라지면 해가 그대로 잘 드러날 테니까요.

 

사욕의 극복 = 본래성 유지

그럼 이젠 성리학과 비교하면서 이해해 볼까요?.

일단 양명. 우린 왜 도덕적 완성이 안 될까요? 더 쉽게 물어볼까요?

우린 가슴에 손을 얻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합니까? 

양명은 우리에게 양지(양심)대로 하냐고 묻는 거죠? 근데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하지 못할까요?. 못 배워서? 아닙니다. 그건 욕구 때문일 뿐이라는 겁니다

사사로운 욕구 때문에. 그러니 사욕을 극복하면 되겠네요. 사욕‘만’ 극복하면 누구나 지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죠.

지선은 지극히 높은 선의 경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순수한 본래성(양지)만 유지하면, 지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단어가? ‘만’이죠. 성리학과 비교한다면 수양법이 하나인 거죠.그럼 성리학의 수양론은요. 거경 궁리론이었죠.

거경 + 궁리 수양법 두 가지입니다. 양명은 성리학의 거경론에는 동의하지만 궁리에는 반대하는 것이죠. 그러니 only 거경입니다. 

 

거경? 존양 성찰하는 것, 존천리 거인욕 하는 것. 내적 수양법이었죠.

궁리?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외적 수양. 이론적, 후천적 학습이었죠.

 

그래서 양명은 ‘사욕을 극복하고 양지를 적극적으로 발휘하면 이론적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후천적 학습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죠. 이걸 양명은 ‘악취는 저절로 싫어하고 악행은 저절로 미워하게 되는 법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반면, 후천적, 이론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성리학은 ‘의리는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힘쓰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완전한 앎(=참된 앎)

성리학과 양명학 모두 양지란 선천적 앎이 있다고 보는 것은 같지만 양지가 완전한, 참된 앎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즉, 성리학은 완전한 앎은 아니라는 겁니다. 선천적 앎인 양지는 있으나, 궁리(사물의 이치 탐구)를 더해야 완전한 앎이 된다는 것이고, 양명은 양지가 완전한 앎(참된 앎)이므로 더할 것이 없다는 것이죠. 결국 사물에 대한 앎이 문제! 성리학 사물에 대한 앎을 얻어야 완전한 앎이 될 것이고양명학은 마음밖에서 보탤 게 없으니 마음 = 양지만으로 완전한 앎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