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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데카르트! 수학자일까? 철학자일까? 서양 철학자 쉽게 이해해 보기

by 연구일인 2023. 9. 26.

천재 철학자 데카르트(1596 ~ 1650)는 수학자일까요? 철학자일까요? 서양 철학사의 유명 인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
데카르트

 

 

데카르트 개요

어린 시절

늦잠 자는 습관

데카르트가 태어난 도시는 1996년 도시 이름을 데카르트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는 프랑스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데카르트 낳고, 13달 만에 폐결핵으로 죽는데요, 어머니의 병을 이어받았는지, 데카르트는 어린 시절 매우 병약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시 의원이였는데요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는 쉬고 싶으면 학교에 안 가도 된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데까르트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침대에 누워 명상하는 취미 갖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새벽까지 깨어 있곤 했고 당연히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타고난 천재

그런데 우리를 열 받게 하는 건, 아버지가 학교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심심해서 가끔 갔다고 합니다. 더 열받는건, 그런데도 전교 1등! 이런 콘셉트입니다.근면하지 않았고, 그러니 연구도 아주 짧은 시간만 하고, 책은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그냥 타고난 천재형인 듯 합니다.

 

 

집안 내력

데카르트는 건강을 위해 프랑스 제일 검에게 검술을 배웁니다. 그리고 용병(직업 군인)을 지냅니다. 아이러니죠. 그러나 그건 그 집안이 대대로 군인을 지낸 후 정계에 진출하는 가풍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학 시절, 짜여진 틀에 맞춘 교육이 싫다고 관둡니다. 머리는 좋지만 게으른 데카르트에겐, 좋은 핑곗거리였을 겁니다. 그 당시 상업의 발달에 기반을 두고 가장 자유로운 나라가 네덜란드였는데요, 네덜란드에서 군인 모집을 했을 때, 네덜란드로 가 군인이 됩니다. 그런데 전쟁도 없던 시기라 전투를 할 일은 없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유럽 여러 지역을 자주 여행했는데요, 활동은 주로 네덜란드에서 했습니다.

 

 

과학과 수학

네덜란드 수학

네덜란드에 가 있을 때였습니다. 길가다 어느 글귀가 눈에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마침 지나가던 똘똘해 보이는 분이 있어서 이걸 프랑스어로 옮겨 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때 지나가던 그 분이 하필. 유명한 수학자 베크만(이삭 베크만)이였답니다.

 

베크만이 장난 끼가 발동해서 아직까지 풀지 못한 기하학 문제를 주면서, 풀면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는데 데카르트가 그 자리에서 풀었다죠. 그래서 두분의 교류가 시작되고 데카르트가 수학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럽에는 베이컨의 과학적 탐구 방법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수학과 과학 모두에 빠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때부터 데카르트는 자연현상을 수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갈릴레이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건! 지구 중심설 거부하고,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지지합니다. 결국 종교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가택 연금 상태로 살았습니다. 갈릴레이가 처벌 받은 것 때문에 데카르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데카르트는 수학과 과학을 포기하고 철학을 시작합니다.

 

참고로 갈릴레이는 데카르트보다 30살쯤 많습니다. 데카르트가 1596년 생이죠, 우리나라 임진왜란(1592~1598) 중에 태어났습니다. 갈릴레이가 1564년 생입니다. 갈릴레이와 동갑은 1564년생, 세익스피어입니다.

 

사실 교황청은 처음에는 과학 진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과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러나 과학의 도전에 탄압을 시작한 거죠.

 

 

의학과 딸

데카르트도 대단하신 분이죠. 대학에서는 의학과 법학을 다 전공했습니다. 데카르트는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가정부와 정식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외자로 태어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딸을 너무 예뻐하는 딸 바보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유전적인 요인인지, 딸이 다섯 살에 죽습니다. 데카르트는 이 일을, 자기 일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까지 의사활동을 하던 데카르트는 다시는 의사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딸처럼 생긴 똑 같은 인형을 만들어서 데리고 다녔다는데 움직이기도 하는 인형이였데요. 사람들은 당연히 이상히 여겼다고 합니다.

 

저서 : 방법서설, 성찰

데카르트 대표적 저서는 '방법서설, 1637', '성찰, 1642'이 있습니다.

 

방법서설

이 책의 원제목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서설’이였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방법이 ‘체계적으로 의심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죠. 그게 우리가 아는 말로는 ‘방법적 회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찰은 비교적 평이한 문체로 쓰인,대략 100page 정도의 짧은 책인데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더 업그레이드 된 형태인,

'나는 내가 사유하는 동안만 존재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수학자

대수 기하학 (좌표 기하학)

데카르트는 위대한 수학자이기도 합니다. 데카르트 이전의 수학의 두 조류는 도형을 다루는 기학학기하학 [유클리드 기학학]과, 식을 다루는 대수학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켰다고 이해하시면 좀 편하실 것 같네요.

이걸 ‘대수 기하학’ 또는 ‘해석 기하학’, ‘좌표 기하학’이라고도 합니다. 좌표 기하학의 기본 개념은 공간상의 한 점! 그 위치를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겁니다. 데카르트는 ‘직각 좌표계’를 발명했습니다. (직각 좌표계란 평면이나 공간에서, 좌표축들이 서로 직각으로 만나는 좌표계)

 

이건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있던 데카르트가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았고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서 ‘좌표’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너무 많이 사용하던 가로축(X)과 세로축(Y)의 값으로 표시하는 것을 말하죠. 그럼으로써 도형도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거고그러므로 미적분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지수 = X

또한, 미지수 = X로 처음 사용한 분이기도 합니다. 모르는 수의 설명을 가장 짧게 해준거죠.

그런데 왜 X냐?

책 만들 때 인쇄소 사장이, 가장 안 사용해서 마모가 가장 적은 글자가 X라, 그걸 쓰는 것이 어떠겠냐고 해서 X가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력의 교정하는 근시 안경도 데카르트가 발명한 겁니다.

 

 

죽음

데카르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스웨덴에서 죽습니다. 데카르트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양난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임진왜란(1592~) 중에 태어나 병자호란(1636~)이 끝나면 얼마 안 돼 죽는)

스웨덴 여왕의 학구열이 대단했죠. 그래서 여러 차례 부탁으로 여왕을 가르치러 갑니다.

그러나, 그 곳은 추운 곳이었습니다.그리고 여왕이 일이 많아 새벽에 5시에 강의를 하게 되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늦잠이 많았던 데카르트는 결국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인식론, 합리론

베이컨의 인식론을 경험론이라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합리론이라고 하는데요, 방법서설은 6편으로 구성된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1편에서,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분배된 있다고 하죠.

그럼 합리론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이성만을 사용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조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데카르트가 세운 새로운 철학 체계를 보통 합리론이라고 하고 넓게는 유럽 대륙의 철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철학를 총칭하기도 합니다.

 

 

영상으로 더 재밌고 편하게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CUBKghTo0ws?si=n0uYIIL0n5IkH4x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