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행의 가방이 더 큰 이유가 있다. 필요할 것이 있다는 두려움이 일기 때문이다.
이야기 시작
친구 셋이 만나 일차로 얼큰하게 취하고 자리를 옮겨 한잔 더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 친구의 작업실로 가기로 합의를 했다. 택시를 타고 정릉골 입구에서 내러 "맥주라도 사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에 말린다. 작업실 큰 냉장고에 맥주와 안주가 가득하다고.
막상 도착해 보니 두 사람이 앉기도 빠듯한 잘 정리된 예쁜 공간이었다. 잠시 앉아 있으라면서 두 친구는 나갔다. 냉장고가 어딨나 싶어 보는데 작은 호텔에서도 있을 법한 사이즈의 냉장고도 없었다. 알고 보니 작업실과 붙어 있는 편의점을 그들은 냉장고라 부르고 있었다. (그 사이 둘이 가서 맥주랑 안주랑 사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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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순례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은 피레네 산맥의 북쪽 프랑스의 '생장'부터 시작된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 수도원'까지 가는 30km 내외의 길이, 전 여정 중에 가장 힘들다. 그리고 '팜플로나'라는 도시까지 이어지는 이틀간의 여정은 한적한 시골길이다. 시골의 물가는 도시보다 약간 비싸다. 여행객들이 들리는 마트의 물가는 더더욱 비쌀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굳이 싸게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 도착하면 큰 마트를 찾는다. 필요한 물건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발바닥의 물집 잡는 약부터 바셀린, 두꺼운 양말, 건조해지는 피부에 쓸 로션까지... 그러다 발견하게 되는 '신라면', '진라면'...
그 도시를 떠나면 가격이 비싸진다. 다음 도시까지는 약 일주일이 걸린다. 물건을 쟁여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별것도 아닌 물건들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순례자 숙소(알베르게)에서 볶은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쌀은 용량이 클수록 가격이 낮아진다. 계란, 감자, 고기 등을 사고 나면 사 먹는 것보다 비싸진다. 다음 숙소에서 또 해 먹으리라 하며 가방에 넣는다. 마트에서 싸게 파니 생수도 사고 콜라도 사고 바나나도 사서 배낭에 넣으면 그제야 후회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민 지고 갈 거냐 말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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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싼 물건이 보이면 먼저 사고 보는 습관이 있다. 조금 더 비싸게 사면 한결 가벼운데, 비싸게 사는 것을 손해 보고 산다고 생각한다. 물론 싸게 살 수 있는데 비싸게 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살 필요도 없는데... 어떤 물건도 최저가로 사는 현명한 이가 되어야 하는 압박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례길에서 가장 가벼운 짐은 웃기지만 '돈'이다. 덜 쓰면 약간 더 불편할 뿐인데 그 걸 아낀다고 가방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갈증이 나면 참아보고 정 못 참겠으면 카페에 들어가 물 한잔, 커피 한잔을 마시면 되는데... 그늘 아래서 시원한 생수를 마시겠다며 전날부터 물을 얼리고 배낭에 짊어지고 다니는 미련한 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흘린 땀이 물만큼 되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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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 무거운 것, 지금 마음이 무거운 것... 내가 습관처럼 가난 가운데 서있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아끼면 잘 산다는 생각에 불필요한 것들을 더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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