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나 라이터 정말 허접한 물건일까?
불티나
나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 시절 별것 아닌 것으로 싸움이 잦았다. "이게 좋은 거네, 저게 좋은 거네..." 하며... 대학생 시절, 아마도 그 시기 남자의 대부분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기도 쉬웠다. 지하철역에 재떨이 있었고,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커피숍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식당에서도 교수님 앞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담배 피우는 모두가 담배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담배는 이상한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 모두 비슷비슷했고, 흡연자가 남과 다른 뽀대를 가질 수 있는 품목은 라이터였다.
늘 경쟁에 몰려 살던 당시 비교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그 시절 '어떤 라이터가 최고인가?'라는 논쟁이 붙었다.
(그렇다! 남자애들은 한심했고 필자는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터보'라 불리던 토치같은 강력한 화력의 터보라이터가 나온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라이터는 관심을 끌었는데 바람 부는 곳이 많지 않아 자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물론 대부분은 일회용 라이터 '불티나', '스파크'를 사용했다. 그걸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지포를 썼다. 불을 붙이며 담배 한 모금을 삼킬 때 비릿한 휘발유 느낌이 들긴 하지만 모양은 좀 있었다. 이외에 할아버지 사용했을 듯한 '던힐', '듀퐁' 브랜드를 들고 다니는 애들이 있었다. 내 주머니에 넣을라 치면 소스라치며 한 소릴 했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싼 거였다. 명품이라 이름 붙은 애들이었다. '던힐', '듀퐁', 왜 그 가격에 그걸 사는지 납득은 안 됐지만 한소리 들을만한 가격은 분명했다.
던힐라이터
'던힐' 브랜드는 라이터 기능보다 패션의 한 아이템으로 라이터를 다뤘다. 멋진 양복에 어울리는 아이템 같은? '던힐'도 유명하긴 하지만 라이터만 놓고 본다면 '던힐'보다 '듀퐁'이다. 이들은 영화 007의 로저무어를 모델로 해서 '듀퐁'라이터를 광고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듀퐁'라이터를 사용하게 했다. 지금은 일상이 된 마케팅 기법이지만 그걸 오래전 '듀퐁'이 한 것이다. 참고로 듀퐁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가죽제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유럽 가죽제품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후일 다루고, 이들은 여행용 가방을 주력 제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발생하면서 여행용 가방을 사는 사람이 없으니 1941년, 오일 라이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952년 당시 신물질 '가스'를 이용한 라이터라는 라이터로 인기를 끌었다.
듀퐁라이터와 007
'듀퐁'라이터의 외관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다. 서민적이고 합리적인 그런 느낌 따위는 없다. 복잡한 무늬를 가진 금속 외관, 뚜껑을 열고 파르테논 기둥과 같은 모서리의 기둥을 돌리면 불이 들어온다. 뚜껑을 닫을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딸깍" 시대배경이 1960~80년대인 영화 속, 폼좀 내려는 등장인물은 '듀퐁'라이터를 사용한다. 영화 '타짜'의 김혜수 씨가 쓰던 라이터, 영화 '도둑들'에서 이정재 씨가 쓰던 라이터도 '듀퐁'이다. 있어 보이는 느낌.
군인들의 로망 지포라이터
영화 속에서 고급 이미지를 지닌 배역에겐 '듀퐁'을 사용하게 하고, 거친 마초 이미지를 사용할 때는 휘발유 라이터 '지포'를 쓰게 한다. 털털하지만 거친 느낌의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 하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는 악당들에게 던진 라이터, 비행기를 폭파시킨 라이터가 '지포'다. 바람에 꺼지지 않는 라이터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줬다. 지포는 이런 이미지를 많이 쓰는데 베트남 전에서 지포라이터 덕에 생명을 건졌다는 전설도 만들었다. 목숨을 구한 하모니카도 있었고, 성경도 있었는데 그 스토리에서는 지포라이터였다. 그래서 지포라이터는 한동안 군대 가는 남자친구에게 선물해야 하는 필수품이기도 했다. '지포'는 초기에는 안 팔렸다고 한다. 역시 바람이 많지 않으면 실용성도 못 느끼는 제품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질척거리는 유럽의 겨울 날씨에서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어 빅히트를 친다. 군납으로 제공된 것.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지포를 사용했다고 우겨도 다들 믿을 정도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이터가 지포인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625 때 참전 용사들을 통해서 들어왔다.
2023년 지금, 그 라이터들이 우리에게 남았는가? 이미 수십억 개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매년 수억 개씩 팔린다는 일명 '불티나'라고 불리는 1회용 라이터가 우리 가까이 있을 뿐이다. 강해서 생존하는 게 아닌 생존했기에 명품이라 하고 싶다. 이 라이터는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집에 쌓이고 전날 어디에서 술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게 해 주고, 너무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그곳이 그곳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는 물품이다. 흡연하는 이들이 공유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지 어려운데, 이전에 누가 썼던 것인들 상관하지 않게 되는 제품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
만일 듀퐁을 잃어버렸다면 속이 아플 것이다. 그런데 이 일회용 라이터는 그렇지도 않다. 아쉬울 것도 없다. 153 같은 멋진 상징 하나 있었다면 더 멋졌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 명품이다. 참고로 이 제품은 PPL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 노출됐다. 이 라이터를 소재로 한 '라이터를 켜라'라는 영화도 있을 정도다.
다시 처음 풋내기들의 말싸움으로 돌아가보자. 라이터의 명품을 꼽으라면 2023년 지금도 사용하는 '불티나', '스파크'가 아닐까?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디자이너 ***의 이름을 빛내 줄 멋진 디자인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 그 시절에는 당연 '듀퐁', '던힐'의 디자인이 최고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꼭 그게 맞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제품보다 모두가 사용하는 불티나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이 시대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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