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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발견

일본의 경제 성장과 잃어버린 30년? 과연 남의 일일까?

by 연구일인 2023. 3. 28.

일본의 경제 성장과 잃어버린 30년, 우리에게는 더 큰 일이 다가온다고 한다. 일본의 이야기 간략 정리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중국? 북한? 언제나 우리에겐 일본이 1위다. 그냥 일본이 안 되면 왠지 좋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 그래서 본인도, 자기 자식 이건희도 다 일본 와세다 대학 나왔다.  손자인 현 회장 이재용도 서울대 시절에는 학사 논문 일본이었고 석사는 게이요 대학에서 했죠. 물론 박사는 하버드에서 하지만. 오죽하면 1980년대 동경대 대학원에는 동경대 출신, 다음은 한국의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았겠는가?

 

 

 

 

일본에 대한 동경


일본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일본을 공부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인이었다. 그들이 한국을 이끈 사람들이고, 그러니, 한국을 키운 건 어찌 보면 일본이다. 전후 근대화, 그런데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한다. 그 당시 근대화란 서구화하는 것을 의미하던 시대다. 그럼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서양의 것들을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이게 처음에는 무척 어렵다. 우린 일본이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고, 어순이 같아 외국어 중엔 일본어가 가장 배우기 쉬웠다. 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라는 공통점도 있고,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일제치하에 있었으니,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그들이 해 놓은 것을 가져오기가 쉬웠다. 그런데 그들의 것을 가져온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왜 처음부터 다시 해? 쉽게 할 수 있는데... 일본인들이 영일 사전 만들어 놓았다. 그럼 그걸 가지고 영한 사전 만들면 되었다. 그래서 일본 애들이 만들어 놓은 걸 우리가 번역한 것. 그래서 영문법도 일본 애들이 만든 것 그대로 쓰다 보니 혼란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너무 싫지만, 일본을 따라 간게 우리의 성장에 영향을 준 것는 분명하다. 그러니 처음에는 우리에게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게 해주었고 좋았다. 그러나 일본을 맹신하는 바보들이 있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일본이야기일본이야기
이병철의 일본이야기

 


일본의 발전과 집단주의 


일본의 발전은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아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완전히 개인주의다. 밥을 먹어도 도시락처럼, 일인상을 먹는 문화다. 일본에서 참 많이 쓰는 스미마셍(すみません) 이건 개인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그럴 수밖에 없을 때 나타난다. 절박했을 때! 전쟁과 같은 때를 뜻한다. 물론 그럴 때의 결속력, 집단주의는 서양보다는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의 전후, 경제성장을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함으로써 집단주의의 산물로 이해한 것 같다. 그 외에도 서양의 일본에 대한 집단주의라는 오해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루스 베네틱트의 ‘국화와 칼’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 정부에서 일본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를 일반인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의 문화와 그들의 도덕 체계가, 전쟁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하다 보니 집단주의적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70
년대부터 일본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먹고 살만해지니까) 세계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다.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그 뒤에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을 보고 서양 사람들이 집단주의로 인식한 것이다.  그 당시로는 일본은 서양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고 외국어도 잘 못하고 특히 일본인은 우리보다 외국어 더 못한다. 그러니 혼자 다니기가 어려웠죠. 물론 지금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금은 겨의 볼 수 없지만, 우리나라도 처음 해외 여행 다닐 때는 그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해외여행 자유화된 게 1988년이다. 그전에는 업무가 아닌 여행으로 해와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 해외여행이 너무나 자유로졌고, 개인, 가족단위로도 여행을 다니지만, 우리도 가이드의 깃발 아래 다니던 시대가 있었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개인주의

일본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집단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일본의 침몰은 정치권에서 야기되는 집단주의적 성격이 일본을 침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장인정신


그리고 일본의 성장은? 장인정신이다. 일본은 4대째 이어오는 우동 집. 100년 넘는 기업이나 사업을 흔하게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일본은 장인정신의 DNA가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장신 정신은 장인을 우대하고 그들의 제품을 우대해주는 그들의 민족성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대를 이어 장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고 그것을 우대하는 그들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에 큰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문화. 그게 명품을 만드는 계기가 된것이다. 거의 같아 보이지만, 몇 배가 비싼 젓가락, 그리고 대를 이어 가는 문화! 아버지의 오뎅 집을 물려받겠다고, 좋은 직장을 때려 치는 유능한 인재, 그건 가업을 잇는다는 의식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가계의 브랜드 가치가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크게 형성 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가계를 물려 받는 게 더 낫기 때문. 즉, 장인 정신이 있어 계승된 것보다는, 그들의 문화가 장인정신을 이어가게 한것이다

 

 

 

일본의 성장과 미국의 대응


전후 일본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다.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빠른 경제 성장 (년간 10% 이상)을 한다. 70년대 두차레의 석유 파동(73, 79)에 잠시 주춤하지만, 이건 일본에게만 닥친 것은 아니었다. 전세계적인 상황이였으니까. 그러나 일본은 엔화가치가 아직은 낮은 상태이니 낮은 가격과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을 파고 들기 시작한다. 그 당시 최대의 소비시장은 미국이었다. 1980년대 말에는 일본이 미국을 위협했다. 일본이 미국 GDP의 절반 수준을 넘었다. 그러니 개인당 소득은 더 많았다. 자동차, 전자 등을 재패한다. 세계인은 다 워크 맨을 쓴다라고 할 정도로 기억나시죠? Sony! 그래서 미국이 일본에 수출 자율규제 요청한다.

 

일본일본
이병철의 일본이야기

 

일본의 버블 붕괴의 원인

일본의 경제 약진으로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 무역적자에 허덕이게 되자 1985년 선진5개국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뉴욕 프라자 호텔에서 회담을 열고 환율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한다. 핵심은 달러화의 평가 절하. 그러니 엔화의 평가절상 즉, 달러화의 가치를 낮추고 엔화의 가치를 높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낮추어서 비싸지게 해서 안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싸진 미국 제품을 일본에 팔겠다는 의도였다.

 

플라자 합의 이후 1달러 당 240엔에서, 1988년는 120엔까지 가는 엔고 현상이 발생한다. 엔고현상에 따라 수출은 어려워질거고, 경기가 어려워지겠다. 그래서 금리를 인하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게 된다. 그러니 돈 쉽게 빌리고 이자는 적게 해준 것이다. 그러니 일단 저축은 안한다.
그러니 돈 빌려다가 수출이 어려워 수익율이 저조해진 기업들은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통해 회사수익을 구현하려 하고, 여기에 온 국민이 다 뛰어든다. 그리고 시장으로 빠져나온 시중은행의 막대한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버블 경제가 시작된다.

 

 

일본의 버블 경제

 

1989년 주식시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일본 주가지수는 1985년 대비 거의 4배의 폭등을 기록하였다. 부동산도 주택지가 2배 이상 상업 개발 토지는 5배 이상 오르게 된다. 이때가 일본의 버블 경제인것이다.  이 당시 동경 땅만 다 팔아도 미국의 영토 다 살수 있다고 할 정도인 때였다. 이때 롯데 신격호 회장이 전세계 부자 순위 4위까지 올라갔다. 이 당시 이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일본은 미국의 록펠러 센터, 파라마운트 영화사 등을 사 들이면서 미국민에게 치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소비는 과열되면서 1990년에는 명차인 롤스로이스의 전세계 생산 댓수의 약 3분의 1이 일본에서 판매되었을 정도였다. 1990년 위기를 느낀 대장성 은행국이 부동산 관련 융자 규제와 대출 총량제를 실시하자 주식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였고 1991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 대출금을 갚지 못한 기업과 가계의 파산이 이어졌으며 금융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진 은행들도 파산으로 치닫게 되고 연쇄 도산이 벌어지면서, 그 유명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경제 비극이 시작됐다. 1989년 전 세계 기업 순위에 10위안에 7개 기업이 일본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0위안에 한 개도 없다. [지금은 거의 다 미국 기업] 1989년 일본의 총 주식가치를, 2020년에 그 수준으로 회복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30년간 제 자리 걸음을 한 것. 이걸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한다. 산업의 발전, 우리나라 일본을 20~ 30년 정도 뒤를 밝아가고 있었다.

 

한국이 경공업, 그 놈들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옮겨가면서, 우리의 경공업이 성장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자동차, 조선, 반도체 다 일본이 먼저 1위했던 것들이다. 우리가 주의할건 일본이 잃어버린 30년까지 따라하면 안 된다는 것!

 

 

https://youtu.be/A1miW6OZLCA

 

 

글. 경제강사 이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