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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맹자 이야기, 왕이 왕답지 않으면 죽여라. 그래서 출세를 잘 못했다는...

by 연구일인 2023. 3. 10.

맹자는 이야기 한다. 왕이 왕답지 않으면 죽여라. 그래서 맹자는 그 시절 인기가 없었다. 용비어천가를 부르지 않았기에... 그래서 출세도 제대로 못했다.

 



 

맹자(孟子 : BC 372 ~ BC 289)의 일생  

맹자는 전국 시대 추(鄒)나라(공자가 살던 노나라 옆의 작은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가(軻)이고,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이다. 생몰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공자가 죽은 지 100년쯤 뒤에 태어난 공자 태어나고 170년쯤 뒤에 태어난 인물이다. 


맹자 성장 과정의 두 고사

어머니 장(仉)씨가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묘지-장례/시장 - 장사/ 서당)로 유명했다. 이외에도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로도 유명한데, 맹자가 엄마 보고 싶어 방학도 아닌데 엄마 찾아갔다. 그랬더니 엄마는 틀에 걸려 있던 베를 칼로 끊었다. 그리고 '학업 도중에 니가 나를 찾아온 것은 (학업을 중단한 것은) 내가 지금 베틀을 짜다 끊은 것과 같다! '라며 훈계하셨는데 맹자는 크게 감동하여 바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한석봉(1543~1605 : 호롱불 끄고 엄마 떡 썰고, 아들은 글을 쓰고)의 일화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한 1,800년 정도 앞선 이야기다.

 

맹자를 기리는 사당인 맹묘(孟廟) 입구

어머니의 힘

공자는 이혼했다(삼대가 일괄성 있게). 맹자도 이혼할 뻔 했다. 그런데 어머니 잘 둔 덕에 이혼 안(못)한다. 하루는 맹자 아주 더운 날 집에 들어가니 와이프 너무 더워 옷고름을 풀고 있었다. 맹자가 봐선 사람의 도리로써 어찌 짐승처럼 '엄마 나 제랑 못살겠어요.' 그런데 엄마는 갑자기 회초리 드시더니 당신의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맹자는 '왜 이러십니까 어머니?' 어머니 왈 '자고로 군자란 집에 들거나 날 때 인기척을 해야 하거늘 덥다고 문을 쑥 열고 들어갔으니 자네 또한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러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나의 잘못일세!' 맹자 크게 깨달아 이혼 안 했다고 한다. 엄마를 잘 둬야 이혼을 안 하는 것이다. 

맹자는 공자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 했다.

맹자는 공자가 가고 100년 쯤 있다 오신 분인데, 맹자의 고향이 공자의 고향에서 차로 가면 대략 20분 거리 쯤 된다. 옆 동네 정도 였는데, 맹자가 듣기로는 그 옆 동네의 그 유명한 분이 자기의 삶과 너무 비슷했던 것이다. 공자 아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미 밑에서 살았다는 공통점. 가난한 홀어미 밑에서 살고 있던 맹자는 공자 같은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이 된다. 공자의 도는 증삼(증자)에 의해 자사에게 전해졌다고 하는데, 증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공급)에게 그리고 그 도를 맹자에게 전한 것이다. 
공자, 증자, 자사, 맹자 그래서 이 네분의 책이 유학의 바이블 사서가 된다. 

 




공자의 손자는 왜 자사인가?

공자의 손자의 이름은 공급이다. 그런데 왜 자사? 공자의 본명은 공구인데 존칭을 붙여 공자라 부른다. 그런 공급도 존칭 쓰면 공 선생이니 공자가 되는데 구별 안 되는 문제가 생겼다. 그럼 이름 부르면 되지 않겠는가 싶어 자사라고 부르는 거고, 존칭과 함께 쓰면 자사자라고 부른다. 이런 경우 유사한 게 한 명 더 있었데, '한비자' 당 말의 한유와 비교돼서 한유를 한자라고 한다면 한비도 한자가 된다. 그래서 이름까지 다 써서 한비자라고 부른다.


맹자의 저서

맹자, 그의 만년의 저술이라고 하나 의문이며 실제로는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보는 맞을 듯 싶다. 양혜왕(梁惠王: 양나라 또는 위나라라고도 하는데 혜왕)과의 대화인 양혜왕, 제자인 공손추(公孫丑)와의 대화인 공손추, 등문공(滕文公)이 세자 시절 맹자와 대화한 등문공, 눈 밝은 옛 사람인 이루(離婁)에서 시작된 이루, 제자 만장(萬章)과의 대화인 만장, 고자(告子)와의 대화인 고자, 마음을 다한다는 뜻인 진심(盡心)에서 시작되는 진심 전체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는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모두 14편으로 구성했다.   

달변가 맹자


맹자의 말솜씨는 뛰어난 달변가였다. 누구든 맹자에게 걸리면 죽음이었다고 한다. 요즘 태어났다면 랩퍼였을 듯. 랩퍼로 표현하면 파이터, 디스의 대가로 대단한 독설가였다. 맹자는 취직했을까? 디스가 심했으니 왕이면 좋아할 리 없었다. 그래서 등용된 적도 없었다. 당대에는 별로인 인물이었던 것. 현실 정치에 몸담지 못했던, 그래서 어찌 보면 정치이론을 완성할 수도 있었다. 참고로 당시 진나라는 상앙(법가) 제나라는 손자(병가)가 등용돼 있을 때였다.




 

왕도(王道) 정치, 성선에 기반 둔 정치

우린 맹자 그러면, 성선설! 이게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맹자는 성선을 주장한 이유가 다 정치이론 위한 것이였다. 인과 의란 덕에 의한 정치가 왜 가능하고 바람직한지를 위한 것. 즉, 왕도가 왜 가능해? 성선이니까. 즉, 사람들 때어 날 때 착하게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성선설은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정치이론은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맹자의 인성론은 후대에 계속 논쟁의 근거가 된다. (주자-양명-다산 정약용) 그럼 왕도는? 왕의 길, 왕도란 왕 노릇 하는 길, 즉 정치철학을 뜻한다.


仁政(인정) 


왕도의 핵심은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유가의 사랑은 仁(인)으로 인이란 덕에 기초한 정치 그 것을 인정(仁政)이라고 한다. 그러면 인의 단은? 측은지심. 측은지심에 따른 정치, 그러니 백성들의 안 된 것 못 보는 정치, 측은지심 = 불인지심이니 불인지심에 기초한 정치다. 불인지정. 측은지정이라고 해도 된다.


왕도 정치의 사례, 여민동락(與民同樂)

한나라 왕이 정말 크고 잘 가꾼 정원을 보여주며 '나 같은 사람이니까 이런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잘 만들지 않았소?' 그랬더니 맹자가 묻는다. '이 정원에 들어오거나 나무를 베면 죽인다고 하던데요. 그러니 누가 왕의 정원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정원이 크다고 아우성입니다. 만약 이 정원에 백성들도 들어와 쉬게 하시고, 함께 놀게 하시면 왕의 정원이 작아 넓혀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맹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모든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과 걱정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여민동락.’을 강조하였다.  

 

 

오십보 백보(五十步百步)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일화다. 양나라 혜왕(양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백성들에게 잘하는데 왜 백성들 불만도 많고 다른 나라로 가는가?'

이때 맹자는 비유를 든다. 
"전쟁에서 겁이 난 병사가 도망쳐서 백보쯤 가서 멈추었고, 또 다른 병사도 겁이 나 도망치다가 오십 보(步 : 걸음 보)쯤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백보 도망친 사람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십 보나 백보나 도망친 것은 매한가지이니 조금 도망쳤다고 남을 비웃을 수 있겠소?"라고 혜왕이 말했고. 혜왕은 부끄러워서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말문을 닫았다고 한다. 

 

오십 보백보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같다. 다른 나라 제후들보다 내가 낫지라고 할 때 맹자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너도 별반 차이 없거든!"

패도(覇道)


맹자는 왕도정치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페도라는 대립되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패는 으뜸, 두목이란 뜻이고) 패도 사전적 의미는 인의를 무시하고 무력 = 힘(力 : 력)으로 다스리는 정치를 말한다. 무엇으로? 무력으로, 힘으로 다스린다. 인의의 덕이 아니라 무력으로 힘으로 이다.  춘추오패! 많은 나라 중 패권을 쥔 5개의 강력한 나라, 전국시대 모든 국가들이 패권을 갖고 싶어 하던 시대다. 그러니 춘추 전국 때 사용되던 시대적 용어정도로 이해해도 좋다. 물론 우린 지금도 사용하지만.

민본주의적 혁명 사상


正名(정명) + 民本主義(민본주의)
공자 正名(정명)은 임금이 임금다워야 한다고 했다. 근데 임금답지 못하면?이라는 질문에는 언급이 없다. 맹자도 정명에 영향을 받는데 여기에 강한 민본주의가 결합한다. 맹자의 민본 표현으로 나오는게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국가가 그다음이며 군주를 가장 가볍다’ (백성≻ 국가≻ 군주)’ 이때 국가 대신에 사직이라고 나올 때도 있다. (원문은 사직임) 사직은 사극을 보면 '전하. 종묘와 사직을 돌보소서!'의 사직으로 종묘는 종로에 있는 종묘(宗廟)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사직은 사신과 직신으로 농사 관련 신 이름인데 그 당시 농업이 기반이 사회다. 그래서 국가 지키는 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고 더 단순화시켜서 국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럼 왕이 왕 답지 못하면 백성을 위해서 왕은? 이정현의 노래 제목과 같다. "바꿔 바꿔." 맹자는 혁명사상을 주장한다.

 



 


정통과 혁명


공자는 존주론을 주장했다. 왕은 하늘의 선택 받은 자 하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 인간의 태양! 그런데 자연의 태양이 그림자를 만들어 그래서 그림자 안 생기게 하기 위해 씌우고 다녔다. 그런데 맹자는 죽여도 좋다고 했다. 혁명! 당시로는 획기적인 발상인 것이다. 천자적 발상을 가진 상황에서 그 당시로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한나라때까지 금서였다. 

 
선생님이 어떻게 정통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맹자는

 

'나는 왕을 시해하라고 하지 않았다. 잡패(범부=일부)를 살해해도 좋다고 했다.' 시해는 왕에 쓰는 말이다. 그러니 나쁜 왕 시해한 것이 아니다, 살해한 것이다 왕이 왕 답지 못하면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범부, 악당 뭐 이런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맹자는 탕왕이 하나라의 폭군 걸을 죽인 것이나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를 죽인 것은 못된 사나이 한 명을 죽인 것을 뿐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맹자의 사상이 주류다. 그건 중국에서는 주자에 의해서인데 우린 주자학을 수용한 이유도 있고, 이성계의 쿠데타로 나라를 세웠으니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맹자가 주류가 되었다. 

 

글. 가생연

 

 

영상으로 보시려면

 

https://youtu.be/IptOT6WZs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