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이야기

조선 천재 율곡 이이 그런데 4가지는 없는 샌님?

by 연구일인 2023. 2. 14.

조선의 천재 율곡 이이, 5천원 화폐인물 그런데 재수가 좀 없었다고 한다. 잘 알고 있는 듯 하나 잘 모르는 율곡 이이의 이야기. 율곡이 이이의 엄마가 신사임당 정도 안다고 알고 있다 생각하지는 말자.

 

율곡 이이의 가족 

 

덕수 이씨 이이
이황은 8남매 중 막내고, 이이는 7남매 중 5째 태어났다. 이황은 진성 이씨인데, 이이는 덕수 이씨. 덕수 이씨 집안에 유명한 분이 이이 말고도 이순신(1545 ~ 1598)이 있다. 참고로 이순신이 이이보다 10살쯤 어리다. 율곡과 퇴계 모두 화폐 전속모델인데, 이황은 1,000원, 이순신 100원, 이이는 5천 원!

 

 

 


신사임당

그런데 이이의 엄마도 화폐의 전속모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신사임당. 우리나라 엄마 중에 가장 유명한 아줌마인 셈이다. 그러니 이 집안이 가장 비싼 가문이 된다. 55,000원!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

현모양처 하면 신사임당! 그런데 현모양처 맞는지 의문이 든다. 현모, 즉 현명한 엄마는 맞는 것 같다. 이이 같은 아들이 있으니 그런데 양처? 좋은 부인? 그런데 우린 그 남편을 잘 모른다. 보통 유명한 사람은 집안 배경을 설명할 때 엄마는 성이나 이름 정도만 나오고, 아버지의 경력이 자세하게 남는데, 율곡의 경우에는 정반대다. 어쩌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와이프가 왠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이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이었던 이원수다. 


강릉 오죽헌 

이이는 강원도 강릉 오죽헌 태생인데, 오죽헌은 이이의 외가 집이다. 오죽헌은 까마귀 오, 대나무 죽자니가 집 뜰에 검은 대나무(오죽 : 烏竹)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신사임당의 부모, 이이의 외조부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강릉 지역의 부호의 딸이었고, 이이의 아버지를 데릴사위로 데리고 온 거였다. 사임당의 아버지는 완전 딸 바보였다고 한다. 은근히 데릴 사위 얻고 싶어 하던 분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신사임당은 많을 걸 공부할 수 있었고, 결혼 전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남편의 무능

신사임당, 이 분 지금 태어났으면 정말 한 가닥 했을 분이다. 근데 그 시대적 제약이 있던 시대이니, 시집와서 양처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사임당은 남편 공부도 시키고 정계 진출을 위해서도 노력을 했는데 남편이 따라주질 못하지... 상대적으로 남편은 능력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애를 낳았는데, 애가 천재였던 거지. 그래서 신사임당은 남편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목숨을 걸게 된다.

 


파주시 율곡리

당시는 태어나면 일정기간 외가에서 자라는 것이 관례였으니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 살다가 6세 때 상경한다. 아버지에게로 갔는데 그곳이 파주시 율곡리 그래서 호 율곡(밤골)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묘소가 지금 경기도 파주시 자운산 기슭에 있는데 지금의 경기도 파주 법원리다.


천재  구도장원공

이이는 천재였다. 3살 때 이미 천자문을 알고, 일곱 살 때에는 안 읽은 책이 없었다고 한다. 이이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이기도 했지만,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영재교육'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유학의 경전 ‘사서오경’ 지금의 수능 과목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간단한 것 같지만 문제가 있다. 사서오경 다 합치면 43만 자쯤 된다는데 하루에 200자 암기해도 6년이 걸리는 양이다. 외우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외우면 까먹는다는...  더욱이, 그 당시 암기도 중요하지만, 해석하고 응용하는 능력까지 필요했다. 그러니 주석 즉, 당대 유명인의 해석까지 습득이 돼야 하는 것. 그러다 보니 공부만 해도 공부기간이 3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평균적인 과거 패스하는데 30살은 다 넘어야 가능했다. 

 

 



그런데 율곡은 과거에 총 9번 장원 급제하였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렀다. 장원은 1등이라는 말, 쉽게 말해 보는 시험마다 수석 합격 했다는 의미다. 요즘 식으로 전국 1등 9번 이런 의미인데 아마도 상징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듯싶다. 요즘으로 따지면 문과가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 다 해야 최대 6번이기 때문이다. (초시, 복시, 소과, 대과 이런 것들) 만약, 상징성이 아니라면, 볼 수 있는 시험이 6가지뿐인데 구도장원이라 하니 천재임을 과시하기 위해 이미 붙은 시험을 또 본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 우리로 따지면 수능 만점! 다음 해에 또 봐 또 만점! 이런 식... 그래서 애초부터 적이 많았을 수 있다. 

이황과의 비교 : 천재 vs 노력파 
이황은 대과에 세 번을 떨어졌다고 한다. 누가 더 천재인 것 같은가? 항상 비교할 때 이황은 노력파, 이이는 천재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이황이 이이보다 머리가 나쁘던 것이 아니라 "시험 보는 요령을 모른 결과"였던 거다. (필자도 그렇다고 주장 중이다) 퇴계는 요새 식으로 말한다면 '출제 경향'을 모르는 학생이었던 것. 주로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반면 이이는 훌륭한 엄마를 둔 것이다.

 

신사임당의 죽음 그리고 계모에 대한 효성(혼정신성)
위대한 엄마를 둔 16살의 이이, 그때 엄마가 죽는다. 신사임당은 신랑에게 ‘내가 죽어도 첩 들이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애들 교육에 안 좋다고. 신랑 이원수는 그렇게다고 하고 신사임당이 죽자 바로 첩 들인다. 그런데 그 계모는 성격이 괴팍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도 이이의 효성이 대단했다. 이이의 효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혼정신성(어두울 혼, 정할 정, 새벽 신, 살필 성)’ 즉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 드리는 예를 했다. 아침마다 문안인사 드리러 갈 때 정종 한잔 식을까 품에 안고 가서 식으면 다시 데워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이가 계모보다 빨리 죽는데 계모가 삼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화폐 속 모자

 


만언봉사, 사회경장론

이이 이분 왕에게도 참 비판 잘했다. 상소도 참 자주 썼다고 한다. 임금이 정치 똑바로 못하니까 신하들 개판이고 나라가 이 모양인 것이라고. 임진왜란 전인데 사실 이건 목숨 건 행위였다. 지금도 대통령에게 정치인은커녕 언론도 못하는 짓! 그런 이이가 39세에 『만언봉사』를 왕에게 올린다. 만언(萬言 : 일만 만, 글 언)에 이르는, 일만 자에 이르는 상소라는 뜻인데, 실제는 1만 2,000자가 넘는다. 장편의 상소문인데 선조는 안 읽고 안 들었던 것 같다. 이 상소문에 적힌 내용 중에 하나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게 ‘사회경장론’으로 이이는 사회 개혁을 주장했다. 

 

 

 

 

글. 가생연